탐라국입춘굿/탐라국입춘굿

탐라국입춘굿이란?

제주민예총 2014. 1. 20. 13:57

 

 

 

 

입춘굿은 ‘춘경(春耕)’ 또는 ‘입춘춘경(立春春耕)’이라 하며 ‘춘경친다’고 한다. 입춘굿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이원조(李源祚)가 제주방어사로 부임하여 헌종 7년(1841)에 쓴 『탐라록(耽羅錄)』 ‘입춘일념운(立春日拈韻)’에 있다. “24일 입춘날 호장은 관복을 갖추고 나무로 만든 소가 끄는 쟁기를 잡고 가면 양쪽에 어린 기생이 부채를 들고 흔든다. 이를 ‘퇴우(退牛 소몰이)’라 한다. 심방 무리들은 활기차게 북을 치며 앞에서 인도하는데 먼저 객사로부터 차례로 관덕정 마당으로 들어와서 ‘밭을 가는 모양’을 흉내 내었다. 이날은 본 관아에서 음식을 차려 대접하였다. 이것은 탐라왕이 ‘적전’하는 풍속이 이어져 내려온 것을 말한다(二十四日 立春 戶長具官服 執耒耟以木爲牛 兩兒妓左右執扇 謂之退牛 熱群巫擊鼓前導 先自客舍次入營庭 作耕田樣 其日自本府設饌以饋 是耽羅王籍田遺俗云).”고 하였다.이 기록을 통해 민(民)을 대표하는 호장이 앞에 서면 제의를 주관하는 심방이 연희를 통해 흥을 돋우고 관에서는 장소와 음식을 제공하는 민·관(官)·무(巫)가 하나가 된 행사임을 알 수 있다. 이 입춘굿이 고대 탐라국 이후 이어져 왔다는 것은 제주도에서도 농사가 생업의 근본이었음을 의미한다.

 

일제시대인 1924년 제주도청에서 발간한 《미개의 보고 제주도》에는 “매년 입춘일 목사청에 모여, 한 동리마다 흑우(黑牛) 한 마리씩을 바쳐, 목사와 도민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함과 동시에 농작물의 풍요를 산신과 해신에게 빌고, 여흥으로 가면극 형태의 고대극과 흡사한 것을 연출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또한 조선시대 이원조 목사가 쓴 《탐라록》은 입춘굿에 대해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는데, 이원조는“춘경(春耕)의 풍속은 고대 탐라왕의 친경적전(親耕籍田)의 유습”이라 했다. 이를 기록한 때가 1841년이니 탐라국 이후 그때까지는 입춘굿이 성대하게 치러졌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물론 그 이후에도 이루어졌으나, 가장 확실한 당대의 문헌기록으로 따진다면 그렇다) 즉, 탐라-고려 속령-조선 지방으로 이어지는 장구한 역사 속에서 탐라왕-지방관-호장으로 이어지는 면모의 변화를 겪으면서도 입춘날 목우를 끌고 한 해의 풍농을 비는 의례는 쉼 없이 이어져 왔다는 것이다.

 

<입춘>은 한국은 물론 중국·일본 등 동북아 3국이 모두 중요시하는 농경세시이기도 한데, 우리나라에서는 제주도를 제외하고, 입춘춘첩을 써 붙이는 정도를 빼고 나면, 그 의미와 의례가 매우 간소화되어 있다. 그런 측면에서 제주도의 입춘굿은 동북아국가와 민족문화의 공통점과 지역성의 독자성을 동시에 지니는 가치 있는 것이다.

2003년 강릉단오제의 유네스코 등재와 맞물려 한·중 두 국가 간 문화전쟁에 가까운 논쟁과 충돌이 있었다. 결국 양국 문화전통의 공통점과 차별점을 인정하는 선에서 이 일은 일단락되었는데, 그 이후 민족과 국가를 공유하는 문화유산에 대해서는 2국 또는 3국 동시 등재가 대세가 되었다. 동북아는 모두 중국문화의 아류 또는 영향 하에 이루어진다고 믿는 세계적인 오해와 속설은 이와 같은 문화적 변별력 속에서 더 이상의 설득력을 잃게 된다. 우리 민족의 문화적 독창성과 전승문화의 독자성을 지닌다는 점에서 입춘굿 또한 한층 그 존재의 의미가 커질 수밖에 없는 문화유산이기도 하다. 어쩌면 향후에 중국, 일본이 입춘절 세시축제를 유네스코로 끌고 가는 상황이 온다면, 제주섬의 입춘굿은 대한민국의 입춘절 세시축제의 연고지로 더욱 그 가치를 주목받을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입춘굿은 제주도에서 유일하게 탈춤문화를 가지고 있다. 두레와 농경문화에서 비롯된 탈춤은 조선 후기 한반도 전체적으로 매우 풍부하게 발전된 데 비하여 유독 제주도에서만은 이 탈춤문화가 전승되거나 문헌상으로도 확인되지 않고 있다. 물론 <제주큰굿>의 전상놀이나 영감놀이 등 일부 굿놀이에서 일회적으로 종이탈이 쓰이기도 하나, 입춘굿에서 비로소 연희적 의미의 탈굿놀이를 만날 수 있다. 이는 제주문화의 다양성을 풍부하게 하는 독자적 가치를 높이는 요소이기도 하다.

 

입춘굿에 대한 기록은 이원조(李源祚)의 『탐라록(耽羅錄)』, 김석익(金錫翼)의 『심재집(心齋集)』, 김두봉(金斗奉)의 『제주도실기(濟州島實記)』, 진성기의 『남국의 무속』등에 실려 전하고 있는데,?春耕?의 풍속은 고대 탐라왕 때의 ?親耕耤田?의 유습이며, 탐라국 이후 1841년까지도 왕이 몸소?밭갈이?하는 모습을 보여 농사의 풍요를 기원하던 농경의례가 전승되고 있었다(문무병)고 한다.

 

현재 제주도에서 연중 행해지는 축제들 중에서 전통문화축제라 자칭·타칭하는 축제들은 많으나, 진정 과거로부터 그 맥을 잇고 있는 전승문화축제라 칭할 수 있는 것은 입춘굿뿐이다. 일제시대 민족문화말살정책에 의해 단절된 것을 민속학자인 문무병 박사가 1999년에 복원하였다. 완전히 맥이 끊긴 축제가 제주굿의 원리적 복원의 이론과 현대적인 도시축제의 골격을 갖추어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이다.